제로뎁스(Zero-depth)로 스마트폰 사용하기

0. 사용자경험 사건 일지. [2020.01.03]

긴장감이 흐르는 출근 첫 날.
우연찮게 함께 앉아 있던 인턴 세 명은 공통적으로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교수님. 인턴의 핸드폰을 가져가시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조작하신다.

잠시 후,
돌려받은 휴대폰에는 설정된 바이오 인증이 모두 지워져 있었고, 비밀번호마저 바뀌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이 어리둥절한 인턴들의 손에 말 없이 한 장의 종이를 쥐어 주시는데…

[제로뎁스(Zero Depth) 경험: 락스크린(lock screen)에서만 살아보기]

*제로뎁스(zero depth)란: 앱에 직접 접속하기 이전의 단계. 이 글에서는, 대시보드 또는 락 스크린에서 어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총체적 서비스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인턴들의 UX Lab 경험이 시작되었다.

1. 유저(User) 분석

해당 경험에 대한 감상을 들어보기 전에 유저들에 대해 알아보자. 세 인턴의 전공 베이스와 아이폰 기능에 대한 노출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 [인턴 1] 경영과 정보문화학 전공. 아이폰 경험 10+년. 다양한 아이폰 사용방식에 익숙한 유저. 대시보드 및 시리 능숙한 유저.
  • [인턴 2] 언어와 심리학 전공. 아이폰 경험 4년째. 대시보드를 에어팟 배터리 확인 용으로만 사용했던 유저. siri는 영상 시청을 방해해서 항상 꺼두었음.
  • [인턴 3] 컴퓨터공학 전공. 아이폰 경험 4년째. 대시보드 소극적 유저. 기본기능에 2-3개 위젯 추가 사용.

이러한 각 유저들의 특성은 총체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셋의 차이는 다음 보고서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 경험 보고서

[인턴 1] Reflexivity and irony of simplification

제로뎁스에서 보여지는 기능들과 경험은 최소한을 통해서 심플하고 직관적인 서비스를 위해서 개발 되었다. 하지만 제로뎁스는 그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줄 수가 없다. 더 향상된 서비스의 창문 같은 역할을 할 뿐 자체적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경험에서 느껴진 가장 큰 것은 최소한만이 주어지고 최대한의 서비스를 접하지 못 했을 때 유저는 단순한 액션 밖에 실행하지 못하기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유저가 제로뎁스와 non-제로뎁스의 사이의 관게에서 느끼는 특징 두가지를 정리 해 보았다.

Simplification의 irony: 제로뎁스는 서비스와 인터페이스를 simplify하고 step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뎁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더 많은 설정 step을 감수해야 하며, 이러한 설정은 자주 user friendly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이폰의 경우도 그렇다. 아이폰을 10년 연속으로 사용하고 있는 본인도 해당 step들의 경우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6번의 시도를 해야했다. 아래의 step은 유저가 거쳐야하는 많은 단계들 중 두 가지이다.

  • 시리 설정이 안 되어있으면: (설정 들어가기>Siri 및 검색>수 많은 어플리케이션 중 원하는것 탐색>시리 활성화)
  • 시리 설정이 되어있으면 (대시보드>편집>단축서 설정>단축어 생성>동작 추가>앱 탐색>단축어 설정>단축어 이름 설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많은 어플리케이션과 단계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행 하는 것은 쉽지 않다.이러한 불편함은 많은 유저들이 제로뎁스의 다양한 경험과 서비스를 외면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Reflexivity 현상: Reflexivity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원형적인 관계를 말한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의지한다. 제로뎁스의 경우, 제로뎁스와 non-제로뎁스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임을 나타낸다고 보여진다. 최대의 서비스에 지친 사람들은 제로뎁스와 같은 최소화 서비스를 통해서 불편함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서비스만 사용하다 보면 최대한의 서비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제로뎁스와 non-제로뎁스 사이를 오고가며 자신에게 필요한 task를 실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가 제로뎁스와 non-제로뎁스 사이의 적절한 자신만의 원형적인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향상된 UX경험을 위해 필요하다.

[락스크린(lock screen)에서만 살아보기]는 개인적으로 매일 사용하던 제로뎁스의 양면성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최소한은 최대한을 갈구하게 만들고, 최대한은 최소한에 대한 갈망을 준다. 적절한 중간단계를 찾아가는게 중요해보인다.


[인턴 2] 아장아장 대시보드 입문기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스마트하지 못하게 사용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나름 아이폰 사용 5년 차인데 드디어 대시보드를 ‘배터리 확인 용’, ‘디데이 카운팅 용’ 이상으로 사용한, 그야말로 인생 첫 번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지껏 휴대폰을 잠에서 깨우고 활동을 시작하게 하려면 ‘잠금 해제’라는 의식을 치러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이전에도 생각보다 많은 기능들이 가능했다. 개인적으로는 잠금 상태에서도 노래를 재생시킬 수 있고(액세서리에 따라 다소 제한적이지만!),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홈 및 잠금 화면’의 사용량이 매우 늘었다. 그의 비중이, 직접 접속해야만 이용 가능한 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불편한 부분도 꽤 존재했다. 아이폰의 깔끔한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모든 위젯들의 크기가 동일하다. 그렇지만 배터리의 잔량을 알려주는 위젯과, 일주일의 일정을 알려주는 캘린더 위젯의 크기가 같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야 할 대시보드를 유저가 복잡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느끼지 않게끔, 날씨나 배터리 등 상태를 나타내는 정보는 상단의 시계 옆에 배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앱과의 상호작용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갤러리 위젯이었다. 유저들은 보통 어떤 기능을 바라며 갤러리 위젯을 추가할까? 나 같은 경우에는 최근 사진이나 즐겨찾는 사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등록하였다. 그러나 대시보드에 뜨는 건 뜬금 없는 ‘인물 사진’, ‘지난 3주 동안 최고의 순간’, ‘서울시’ 등의 분류였다. 내 아이폰 갤러리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또 나의 케케묵은 추억이 무엇인지는, 앱 내 ‘For You’ 탭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 위젯은 꼭 앱에 접속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았기에 ‘제로 뎁스’라는 테마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3D 터치로 최근 사진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결국 갤러리를 위젯 리스트에서 뺐다.

짧은 일수 동안 입맛에 맞게 대시보드를 요리조리 편집해 보았더니, 지금은 꽤 만족스러운 형태가 되었다. 이중 나의 일상 안에서 ‘제로 뎁스’가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된 앱을 꼽으라면 역시 ‘카카오맵’을 선택하겠다. 카카오맵은 현재 위치, 경로, 로드뷰, 대중교통 옵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는 초행길이 아닌 연구실 출근 경로에서,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버스 오는 시간’에 대한 정보인데, 이것을 대시보드에 내걺으로써 인지적 노력이 크게 절감하게 되었다. 굳이 앱에 직접적으로 접속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 결과, 위 사진과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어쩌면, 의미 없이 어플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짓을 더 이상 안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턴 3] 대시보드의 한계

제로 뎁스(Zero Depth)단계에서의 편리함은 앱에 접근하지 않아도 핸드폰의 상태나, 정보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대시보드는 제로 뎁스의 가장 대표적인 환경이다. 그러나 현재 대시보드 위젯들 중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필요하지도 않는데 만들어진 위젯’과 ‘필요한데도 만들어지지 않은 위젯’들이 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금융 어플리케이션이다. 대표적으로, 각종 은행 앱과 토스(TOSS), 카카오페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금융의 경우 보안을 위해서 본인 확인하는 절차가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위젯을 터치한 후 결국에는 인증절차를 거쳐 앱을 열어야만 원하는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인 우리나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 될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은 음악 플리케이션이다. 애플뮤직, 네이버뮤직, 멜론, 벅스, 유튜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유튜브를 동영상 플랫폼이 아닌, 음악 스트리밍 앱으로서의 활용에 집중하여 분류하였다. 프리미엄 유저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애플뮤직이 아닌 다른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으로는 음악을 대시보드에서 재생할 수가 없었다. 음악을 듣는 것이야말로 앱에 직접적으로 매순간 접근해야할 필요가 없으면서 사용량이 많은 대표적인 앱이라고 생각하기에, 음악 어플리케이션의 위젯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결론적으로 대시보드는 아직까지 기본기능(시계, 날씨 등)외에 큰 이점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각 앱들이 대시보드에 보여져야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개발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앱이 너무 세분화되고 많아지는 지금, 제로 뎁스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대시보드 위젯들은 그 필요성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조금 더 나아가서 후에 폴더블, 또는 롤러블 스마트폰이 등장한다면 대시보드의 활용범위와 필요성이 증가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번외로 대시보드만으로 활용이 어려운 기능들을 음성인식 서비스를 통해 실행하였는데, 음성인식 서비스가 실외에서 그 가치가 실내와 비교하여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인식률이 떨어져 어느 정도 크기 이상의 소리를 내야 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눈이 신경쓰여 사용에 부담감을 느꼈다. 진정으로 제로뎁스가 잘 이용되기 위해서는 대시보드와 음성인식 서비스가 서로의 장단점을 고려해 상호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3. 총평

[인턴 1] 최소한의 서비스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갈구 하게 할 뿐이다 (reflexivity)

[인턴 2] 실험적인 이틀이, 노티와 대시보드에 집중하기 위해 잠금을 풀지 못했던 인위적인 상황이었기에 마냥 편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휴대폰 사용 변화의 시작점이 된 경험!

[인턴 3] 필요성은 분명하나 현재로선 기능활용에 한계가 너무나 뚜렷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작성자: 유채라, 박상아, 김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