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미러볼에 대한 관심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구실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민준 선배가 한 박스를 가리키며 이야기했습니다.

“이거, 선생님이 아침에 주고 가신 건데, 라이트 패널이에요. 연구실에 한번 붙여볼까요?”

알고 보니 리빙 랩에서 안 쓰고 있던 라이트 패널을 연구실에 붙여보라고 선생님께서 주고 가신 것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인턴들은 태어나 처음 보는 물건에 신기해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턴들이 벽에 붙일 모양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박스에 있는 음표 모양 예쁜 데 개수가 부족해…”
“설명서 예시들은 정말 못 봐주겠다…”
“내가 만든 모양은? 뭔지 알아보겠어?”
“물음표 모양은 어떨까? UX 랩이니까 항상 궁금해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희는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30분이 넘도록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물음표 모양을 만들기로 했고 열심히 라이트패널을 벽에 붙였습니다.

이제 라이트 패널에 불을 켤 차례가 되자 연구원 모두 불빛 색상을 설정해 보겠다며 앱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패널의 색상을 이리저리 바꿔보겠다며 앞다투어 시도해 보다가 한 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시도하여 패널과 앱의 연결이 끊기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구글 홈에 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불빛이 변하는 모드로 설정해 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연구실이 힙해져따!!!💓”

노랫소리에 따라 불빛이 바뀌는 것으로 설정을 해 두니, 마치 EDM 콘서트장처럼 되었고 다들 반짝이는 미러볼 같은 라이트 패널 사진을 한 장씩 찍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흐르고 인턴 기간이 끝나갈 무렵, 저는 제가 18동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으면 라이트 패널이 항상 꺼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라이트 패널을 켜면 왠지 차분했던 연구실 분위기가 힙하게 바뀌는게 좋아 출근하면 항상 라이트 패널을 켰는데, 지금껏 오직 저 혼자만 라이트 패널을 열심히 켜고 감상했던 것이었습니다.
라이트 패널을 처음 벽에 붙인 날 다른 연구원 모두 라이트패널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기에 당연히 저처럼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항상 출근할 때마다 라이트 패널이 꺼져있었기에 제가 켰고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켜는 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연구실 미러볼 담당이 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를 대신해 미러볼을 켜줄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ㅎㅎ
앞으로 연구실의 미러볼은 항상 꺼져있으려나요…?

작성자: 장서진